예전에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왕따인 제시. 그런 제시에게 레슬리라는 전학생이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레슬리는 제시와 마찬가지로 전 학교에서 어울릴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레슬리와 제시가 친구가 되면서 둘은 변하게 된다.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지만, 환상적인 내용이 가미되면서 보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환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리버보이를 보고 머리에 떠오른 것이 바로 이 테라비시아의 환상이었다.
이야기는 처음, 수영을 하는 제시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제시에게는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시는데, 리버보이는 이별을 앞 두고 제시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잔잔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제시를 바라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심장발작으로 쓰러지신다. 생각보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원래는 병원에 있으셔야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번 여름 휴가는 꼭 가야겠다며 억지를 부리셨다. 그 휴가지가 할아버지의 옛 고향이었던 것이다. 화가이신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리버보이'라는 그림을 완성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시는 그곳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 수영을 잘하고, 검은 머리를 가진- 그러나 어쩐지 신비스러운 소년. 제시는 이 소년에게 할아버지의 작품의 이름인 '리버보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제시의 머리 속에는 할아버지의 생각밖에 나지 않았고, 걱정하는 동안에도 할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오기를 부려서라도 완성하려던 '리버보이'는 좀체 할아버지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처음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제시는 리버보이와 할아버지 작품에서 무언가 연관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 리버보이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마침내 할아버지께서 붓을 들수도 없을만큼 쇠약해지시자, 할아버지는 작품을 포기하시고 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상심한 제시는 다시 리버보이를 보게 된다.
리버보이는 수영을 잘한다.
리버보이는 소원이 있다.
리버보이는 강을 사랑한다.
리버보이는 항상 제시 앞에서만 나타난다.
제시의 할아버지는 소원이 있다.
할아버지는 강을 사랑한다.
할아버지는 제시에게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톰 보울러의 판타지다. 수수하고 멋없으면서도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그려지고,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가 들리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작은 마법. 감동을 강요하지 않지만 잔잔한 물에 작은 돌을 하나 던져놓은 것 처럼 감동의 파장은 부드럽게 일파만파로 퍼진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꿈꿔왔지만 상처 때문에 돌아볼 수 없었던 작지만 대담한 소원. 그것을 할아버지는 자기의 멘토인 제시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위대한 작품을 제시가 알아차렸을 때, 나의 가슴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죽음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고 그 빈 자리는 누가 뭐라 해도 견뎌낼 수 없는 아픔이다.
그러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 손님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덜 아프기 위해 어떻게 할까. 책을 덮고나서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다. 리버보이가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여행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인 열 다섯살. 그 때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제시는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리버보이는 환상이지만 환상이 아니었다. 제시의 준비를 도와주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배려일 수도 있다.
성장소설이라고 해서 청소년기에 봐야 하는 책이었지만, 용케 나이가 더 들어서도 보고 싶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판타지다 미스테리다 해서 자극적인 내용만 앞세우고 정작 남는 것은 없는, 그리고 읽은 후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책들이 많아 아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리버보이도 언론에서 너무 극찬해서 못미더웠던 적이 있었다. 사실 이 소설은 내가 한 번 읽다 포기한 소설이다. 이 소설이 처음 출판 될 때 해리포터를 이기고-이런 문구로 광고를 했기 때문에, 나는 은근히 화려한 문체와 격정적인 스토리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는 내내 소박하고 잔잔하게 흘러갔고, 나는 그것에 실망을 해서 도중에 책을 접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버보이의 파란색 표지를 보자니 이상한 마법에 걸린 것 마냥 책장에 꽂힌 리버보이를 다시 펼쳐 보게 되었다. 그 마법은 정말 신비로웠다. 나는 한 몇년간은 책은 구경도 못해본 사람처럼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소설의 제목인 '리버'처럼 내용은 마치 강처럼 흐르다가, 마침내는 바다에 도착했을 때처럼 가슴이 탁 트이면서 짠하게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간만에 가슴에 오래 남는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2009/03/20 01:27